문화퇴행, 안전하고 쉬운 돈벌이의 유혹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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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-01-09 00:00 조회 4,285회본문
■ “미쳤어, 미쳤어~!”…중독된 사람들
퇴행의 징후는 ‘30초 음악’들이 석권한 대중 음악계에서 분명하게 감지된다. ‘30초 음악’은 ‘싸비’나 ‘훅’이라고 불리는 중독성 짙은 후렴구로 무장한 가벼운 댄스곡이다. 30초 음악은 2007년 ‘원더걸스(사진) 신드롬’을 몰고 온 <텔미>에서 시작됐다. 박진영이 작곡한 이 노래는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기존 노래 형식을 과감히 포기하고, 인상적인 후렴구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을 중독시켰다. 이후 ‘싸비’의 반복으로 곡을 단순화한 작곡가 ‘용감한 형제’가 곡을 쏟아내면서 30초 음악은 보편화됐다. 지난 한 해 동안 그의 손을 거쳐 손담비의 <미쳤어>, 빅뱅의 <마지막 인사>,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<어쩌다> 등이 성공을 거뒀다.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시장 구조의 변화가 있다.
음반 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, 2007년 음악 시장 전체 매출은 4350억원(추정치)을 기록해, ‘황금기’인 1997년의 4104억원을 넘어섰다. 그러나 음반(시디) 매출은 전체의 15%(650억원)에 불과하다. 나머지 3700억원은 벨소리·컬러링·홈페이지 배경음악 다운로드 등 디지털 시장에서 나왔다. 디지털 음악 소비자들은 ‘벅스뮤직’ 등 음악 사이트에서 무료 ‘30초 듣기’를 통해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. 음악평론가 김작가는 “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10곡 정도 일관된 흐름을 가진 앨범의 중요성은 줄어들고, 3~4분 짜리 싱글, 그 안에서도 30초 정도의 후렴구로 음악의 가치가 판단되는 매우 부정적인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”고 말했다. 그 때문에 실력 있는 뮤지션들은 정규 음반을 포기하고, 3~4곡을 묶는 미니 음반이나 싱글 음반으로 전환하는 추세다. 한때 200만장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신승훈은 지난 9월 ‘모던 록’을 가미한 새로운 음악적 시도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지만, 최악의 음반 판매를 기록했다.
■ ‘조폭에서 막장으로’…파국의 초입?
‘퇴행’의 또 다른 무대는 브라운관이다. 최근 한국 드라마를 설명하는 열쇳말은 ‘막’이다. 9일 종영하는 한국방송 일일드라마 <너는 내 운명>(사진), 에스비에스 <아내의 유혹>, <유리의성>, 문화방송 <내 인생의 황금기> 등은 극단적 고부관계, 이혼·파혼, 악녀·나쁜 남자 등 80~90년대 한국 드라마의 ‘클리쉐’들을 남발하며 막장으로 치닫는 중이다. 문화방송 <에덴의 동쪽>은 또 다른 막장 드라마 <흔들리지마>의 작가를 영입하기도 했다. 이는 영화계의 ‘조폭 코미디’ 제작 붐과 비교된다. 영화계는 <쉬리> 이후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자 큰 제작비를 들이지 않고도 관객들을 모을 수 있는 <조폭마누라>류의 ‘조폭물’을 되풀이해 제작했다. 당장 관객몰이에는 성공했지만, 장기적으로는 ‘독배’를 든 꼴이었다. 그 결과가 최근 영화 산업의 위기다.
드라마의 ‘막장화’도 산업적 근거는 있다. 드라마 산업은 배우와 제작자 사이에 출연료 분쟁이 시작될 정도로 위축됐다. 막장 드라마는 싼 제작비로 기본적인 시청률이 보장된다. ‘나쁜 남자-가련한 여자’(또는 반대의 설정), ‘출생의 비밀’, ‘복수를 위한 성공’ 등은 80년대 임채무·김희애 주연의 <내일 늦으리>, 90년대 이종원·심은하 주연의 <청춘의 덫> 등 수많은 인기드라마 속에서 되풀이돼 왔다. 이런 점에서 막장화는 복고화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.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씨는 “2000년대 이후 드라마들이 새로운 시도로 한국 드라마의 부흥을 몰고 왔지만, 최근은 80~90년대로 돌아가는 복고의 흐름”이라며 “이는 분명한 퇴행”이라고 말했다. 이에 따라 드라마 산업 전반의 장기 위축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.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은 2001년 이후 해마다 40~70%씩 고성장을 한 드라마 등 방송물의 수출 증가세가 2008년에는 5% 안팎으로 꺾였을 것으로 추정했다.
■ ‘판화처럼 찍어내는 그림’…새로운 시도는 없다
미술과 뮤지컬도 예외는 아니다. 미술계에서는 최근 ‘지클리’라고 불리는 새로운 작품 제작·판매 방식이 등장했다. 지클리는 원작을 슬라이드로 찍어 특수 캔버스에 인쇄한 뒤 작가가 그 위에 물감을 덧칠한 그림이다. 지클리를 두고 그림을 싼 값에 사고 팔 수 있는 새로운 기법이라는 주장도 있지만, 예술가의 새로운 창작 욕구를 가로막는 독약이라는 혹평이 제기되고 있다.
지난해 뮤지컬계의 흥행 화두는 ‘뮤비컬’이었다. 영화나 드라마로 검증된 각본을 토대로 만든 뮤지컬이다. 그 흐름은 2006년 <싱글즈>에서 <안녕 프란체스카>, <파이란>, <내 마음의 풍금>, <대장금>을 거쳐 최근 흥행작인 <미녀는 괴로워>까지 이어진다. 대작이 사라지고 2~3명의 스타를 내세운 로맨틱 코미디로 뮤지컬이 소품화하는 현상도 문제로 지적된다.
기사출처 : 한겨레신문









